두 기업이 같은 전시장에 나란히 부스를 열었지만, 그 안에서 보여준 미래는 완전히 달랐다. 2026년 4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WIS 2026에서 삼성전자는 비전 AI 컴패니언과 스페이셜 사이니지를 전면에 내세웠고, LG전자는 홈 오피스부터 스마트 주방, OLED 극장까지 꾸며진 실제 생활 공간으로 부스를 채웠다. 두 한국 대표 가전 기업이 AI 시대의 생존 방식에 대해 정반대의 답을 내놓은 것이다. 이 갈림길이 단순한 마케팅 전략의 차이처럼 보인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WIS 2026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 두 전략의 선명한 대비

삼성전자의 선택은 명확했다. 테크 중심 전략이라는 이름 아래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모바일 기술에 AI를 입혔다. 스페이셜 사이니지는 공간 인식 AI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콘텐츠를 조정하는 디스플레이 솔루션이며, 비전 AI 컴패니언은 로봇 청소기부터 가전 전반을 연결하는 AI 허브다. CES 2026에서 선보인 AI TV와 AI 로봇 청소기 신모델도 이 흐름의 연장선이다.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은 혁신적인 기술 역량을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전시를 설계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공간 중심 전략이라는 이름 아래 가전을 집 전체와 연결하는 생태계를 구현했다. AI 홈 허브 씽큐 온(ThinQ On)을 중심에 놓고, 홈 오피스·스마트 주방·OLED 극장이라는 실제 생활 공간으로 부스를 꾸몄다. LG는 구독 플라자를 별도 운영하며 주요 가전의 소모품 교체와 내부 청소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구독 경제 모델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전통적인 가전 판매 방식과의 결별 선언에 가깝다.

왜 이 전략 분기점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가

두 전략이 충돌하게 된 배경은 냉혹하다. 글로벌 소비자 가전 시장은 고금리와 수요 둔화의 이중 압박 속에 있으며, 중국 브랜드들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스펙을 훨씬 낮은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하이센스, TCL, 미디어 등 중국 가전사들이 삼성과 LG의 전통적인 하드웨어 마진을 잠식하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다. 2026년 1월 LG전자가 B2B와 AI를 핵심 성장 전략으로 공식화한 것도, 삼성이 공격적 AI 로드맵을 설정한 것도, 이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문제는 AI를 얼마나 잘 탑재하느냐가 아니다. AI를 수익화하는 모델을 누가 먼저 확립하느냐다. 삼성의 기술 플랫폼 전략은 AI 기술 자체가 차별화 요소가 되는 세계를 전제한다. LG의 구독 생태계 전략은 AI가 서비스 락인의 수단이 되는 세계를 전제한다. 두 전제는 공존할 수도 있고, 한 쪽이 틀릴 수도 있다.

숨은 인사이트: 한국 가전 대기업들은 사실 가전을 버리고 있다

WIS 2026에서 진짜로 일어난 일은 AI 가전의 화려한 데뷔가 아니다. 삼성과 LG가 각자의 방식으로 하드웨어 기업에서 탈출을 선언한 날이다. 삼성의 스페이셜 사이니지와 비전 AI 컴패니언의 공통점은 하드웨어 그 자체보다 그 위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LG의 구독 모델은 더 노골적이다. 기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판다.

역설적이게도, 중국 기업들의 하드웨어 공세는 삼성과 LG에게 최악의 위협이자 최고의 기회다. 하드웨어 마진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두 회사는 결코 이 속도로 플랫폼과 서비스 전환을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 판매 성장 둔화 이후 서비스 사업으로 피벗한 것처럼, 삼성과 LG는 가전 판매 성장 둔화 이후 AI 플랫폼과 구독 서비스로 피벗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K-Nvidia 이니셔티브를 통해 향후 5년간 50조 원을 AI와 반도체에 투자할 계획이어서, 이 전환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한국 가전의 미래 수익은 박스를 파는 데서 오지 않을 것이다.

삼성과 LG가 WIS 2026에서 보여준 것은 AI 가전이 아니다 , 그들이 하드웨어를 버리고 플랫폼이 되겠다는 생존 선언이다.


핵심 요약

  • 삼성: 테크 중심 전략 , 스페이셜 사이니지, 비전 AI 컴패니언 등 AI 기술 플랫폼으로 차별화, CES 2026에서 AI TV와 AI 로봇청소기 선공개
  • LG: 공간 중심 + 구독 전략 , ThinQ On 허브로 전 가전 연결, 구독 플라자에서 소모품·서비스 패키지 판매로 하드웨어 의존 탈피
  • 배경: 중국발 하드웨어 위협 심화 , 하이센스·TCL 등 중국 브랜드의 저가 공세로 두 회사 모두 전통 하드웨어 마진 압박 심화
  • LG, 2026년부터 B2B와 AI를 핵심 전략 공식화 , 소비자 가전 판매 중심에서 기업 솔루션과 AI 서비스 중심 수익 구조로 전환 가속
  • 한국 정부, K-Nvidia로 5년간 50조 원 투자 , AI와 반도체 생태계 육성 계획이 삼성·LG의 플랫폼 전환 속도를 높이는 촉매제로 작동

더 생각해볼 것들

  1. 삼성의 기술 플랫폼 전략과 LG의 구독 생태계 전략 중, 5년 후 더 많은 수익을 만들어낼 모델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2. 애플이 서비스 매출로 아이폰 의존도를 낮춘 것처럼, 삼성과 LG가 AI 플랫폼으로 가전 판매 의존도를 낮추는 데 성공한다면 한국 제조업 생태계, 즉 부품사와 협력사에는 어떤 충격이 오는가?
  3. 나의 회사 또는 포트폴리오에서 하드웨어를 팔던 기업이 플랫폼·구독으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분석해본 적이 있는가?